-
2017년 한해의 회고철학 2018. 1. 1. 01:04
10월 말 연극이 끝나고 실질적인 저의 2017년은 끝났다고 생각했기에 지금와서 2017을 다시 마무리하는것은 풀었던 시험지를 다시 푸는 기분이지만 한번 더 꼼꼼하게 한 해를 결산해내는것은 필요하다고 생각되어 회고를 작성합니다.
들어가기 전에
2017년을 돌아보면
1. 연극동아리
2. 디자인학교의 <우물밖 워크숍>, <페이퍼프레스>
3. 장학금 수여
4. KMUVCD 실크스크린, 모션그래픽 워크숍
5. 국회 청년정책마켓 행사
6. 학과 수업
의 여섯가지 큰 활동이 있었습니다.
이중 어떤것도 포기할 수 없었기때문에 어느때보다 하루-일주일-한달간의 에너지를 잘 관리하는것이 중요했습니다. 먼저 '시간관리' 라는 허상을 파괴하는것이 우선이었습니다. 시간을 관리한다는 것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애당초 시간이라는 개념 자체가 존재하지 않기때문에 있지도 않은 시간을 관리하려 하면 반드시 실패하게 됩니다. 대신 '에너지' 를 관리해야 합니다.
저는 한번에 집중하여 사용할 수 있는 에너지 (저의 경우에는 혼자 작업시 70분, 강의를 들을땐 40분)
하룻동안 작업하는데 사용할 수 있는 에너지 (저의 경우에는 4시간이상 작업할 수 없습니다.)
1주일동안 계획대로 움직일 수 있는 에너지 (저의 경우에는 5일이상 계획이 지속되지 않습니다.) 등등 크고작은 단위로 저의 에너지 사용력(?)을 가늠하여 계획에 반영했습니다. 그리고 중간중간 반드시 푹 쉬는 시간도 넣었습니다. 이때는 SNS도 유튜브도 하지 않고 가만히 침대에 누워있는것이 좋습니다.
(시간표 예시 https://docs.google.com/spreadsheets/d/1wyZyjDzgi43Ec13EfvTH35ZzziWLZm4aY5QxWwtgF7Y/edit?usp=sharing)
충분히 쉬지 않으면 하고싶은 일을 포기해야 하므로 쉴땐 충분히 쉬고, 쓸데없는 일을 과감히 끊는것이 중요했습니다.
1. 연극동아리 창설
조형대 동아리를 만들어 회원들을 받고 1년 계획을 짰습니다. 하지만 완전히 아무것도 모르는 영역으로 도전하는 것이었기때문에 진짜 많은 시행착오가 있었습니다.
ㄱ. 우선 첫번째로 선생님을 모시는 것이었습니다.
운 좋게도 연기선생님께서 연극계의 신이셨습니다. 연기 뿐만 아니라 공연예술영역 전반의 기초적 소양을 가르쳐주셨고 공연제작때도 전체적인 도움을 주셨습니다. 하지만 다른분야의 선생님들께선 정말 실망스러웠습니다. 디자인 영역과 마찬가지로 타 영역에도 자기가 하는 일에 대해 열정도, 비전도, 애착도 없는 사람들이 많다는걸 깨달았습니다.
누군가 선생님으로 모실땐 실력도 중요하지만 우선
카페에 마주앉아 자기분야에 대한 이야기를 두시간 넘게 열정적으로 떠들 수 있는 사람 인지를 봐야합니다. 제가 연기선생님을 통해 배운것은 공연예술 전반에 대한 이해와 관심 뿐만 아니라
'내가 연영과 사람들에게 디자인을 가르친다면, 저분처럼 가르칠 수 있을까?' 라는 충격적인 자기반성 이었습니다.
ㄴ. 두번째로 집단을 이끌어가는 것입니다.
80명 이내의 집단에서는 인원이 어떻든 6~10명의 인원만 활동합니다. 회원들이 잠수타고 빠져나가는 상황에서 집단이 흔들리지 않으려면 애당초 이 집단의 사람들은 전부 같은 열정으로 움직일 수 없다는것을 인식하고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동아리의 존속과 몸집불리기따위는 안중에 두지 말고 '멋진 것을 만들자!' 에만 관심을 두었기때문에 결국 1년간의 긴 호흡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또 구체적이고 강한 비전을 가진 사람들이 1명 이상 필요합니다. 그 사람들을 중심으로 다른 인원들이 응집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ㄷ. 자신의 전공분야와 연계하는것도 중요합니다.
이건 학과수업이나 대외활동에도 적용되었는데, 연극은 그냥 연극 디자인은 그냥 디자인 교양수업도 각자 따로따로 존재한다면 절대 전부 소화해낼 수 없습니다. 나중에 남는것도 없구요. 연기를 배우며 인물의 초목표, 단위 나누기, 믿음갖기 등등을 디자인적 방법론과 계속 융화시키려 노력했습니다. 그렇게되면 연극에도 디자인에도 지치지 않고 나만의 특별한 방법론도 생깁니다. 이것은 디자인적 역량 뿐만아니라 개인의 지적 능력도 크게 향상시킨다고 생각합니다.
ㄹ. 마지막으로 시각디자인학과 바깥의 멋진 사람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습니다.
학교생활 5년(...) 동안 만난 사람들 중 연극동아리에서 만난 사람들이 가장 창조적이고, 개성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한명한명 모두 그들의 미래가 궁금할 정도로 놀라운 사람들이었습니다. 그저 동아리라며 모여 잡담하고 술마시는것이 동아리가 아니었습니다. 진짜 대학교 동아리를 경험하게 해 준 동아리회원들 아니 공극 단원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또 연극동아리에 대한 이야기가 길어지려 합니다. 자세한건 내년에 출간될 <공극 아카이브> 에 실려있습니다. 기대해주세요 ^_^
2. 디자인학교의 <우물밖 워크숍>, <페이퍼프레스>
고마운 후배 박성원과 김민지를 통해 디자인학교 콘텐츠제작원으로서 <우물밖 워크숍> 와 <페이퍼프레스> 를 기획-제작할 수 있었습니다.
https://www.designerschool.net/classrooms/39
<우물밖 워크숍>의 기획의도는 다음과 같습니다.
- 디자인 입시는 디자이너가 되려는 학생들이 거쳐야 할 첫 관문으로 요구되지만, 그 목적이 변질되어 디자인에 대한 이해와 그에 필요한 능력을 키우는데엔 한계가 있다. 오히려 학생들은 입시제도에 의해 실제 디자인에서 멀어지거나, 그것으로부터 철저히 단절되기도 한다. 디자인 학교에서는 이러한 비합리적 간극을 잇기 위해 입시생을 위한 워크샵을 기획했다
<페이퍼프레스>의 목표는 다음과 같습니다.
- 어떤 지식을 전달하는 강의가 아니라 1인 스튜디오를 운영하는 여성 디자이너로서 겪는 다양한 이야기들과 자신만의 생각을 이야기하고 한사람의 디자이너, 한사람의 인간으로서 시청자들과 교감할 수 있는 콘텐츠를 만든다.
디자인학교에서 받은 아무 지침도 없이 0에서부터 콘텐츠를 구상하고, 계획하고, 촬영하고 편집했습니다. 언젠가 이지원 교수님께서 '자기 스스로 뭔가 만들어보는 역사를 가지는것이 중요하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었습니다. 더 나아가 작은것부터 하나하나 만드는것도 좋지만 한번에 일을 확 벌려버리는것이 성장에 크게 도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 경험은 프로젝트 스케일을 크게 벌려보는 연습이 되었습니다. 내가 배우지 않은 분야도 전혀 겁낼게 없다는것을 가르쳐주기도 했구요. 모든 학생들이 졸업작품을 만들기 전 자신만의 역사를 갖고 있어야 할것 같습니다. 졸업학년에 닥쳤을때 이 역사를 시작하는것이 아닌 졸업작품또한 이 역사의 연장선상에 있어야 할 것입니다. 이는 분명히, 분명히 졸업 이후에도 본인의 커리어에 막대한 영향을 끼칠 것입니다.
그리고 이때 좀 더 이 활동에 몰입하지 못했던것이 아쉽습니다. 당시 동아리를 설립하고 활동을 시작하던 때라 이곳에 에너지를 6~70%만 할애했었습니다. 1순위였던건 맞지만, 물어뜯을 수 있을만큼 물어뜯어보는것도 자신의 역량 바운더리를 넓힐 수 있는 방법이었다고 생각합니다.
3. 장학금 수여
규정때문에 관련하여 자세히 적지 못합니다.
학과 사무실에서 공지하는 정보들에 항상 관심을 가져야겠다고 뼈저리게 느끼게 된 계기입니다. 정말 말도안되는 혜택 (전액장학금) 그러나 높은 진입장벽 때문에 나와는 관련없는 일이라 무심코 넘기기 쉬운것들이 많습니다. 근데 막상 높아보이는 진입장벽도 사실 그렇게 높진 않습니다. 미리 계획하고 천천히 조금씩 해 나가다보면 어떤것도 쉽게 해낼 수 있습니다. 이 장학금을 받기위해선 1차적으로 10장에 달하는 자기소개서를 써야 했습니다. 제 기억으로는 약 2주쯤 전부터 쓰기 시작해서 장학금 수여 목적과 이전기수의 장학생들의 특징을 분석하고 하루에 한번씩만 퇴고하였습니다. 될지 안될지도 모르는 지루한 자기소개서를 쓰느니 다른 작업을 하는게 낫겠다고 생각한적도 많았지만 이 글이 장학금을 받기위해 소모되는 글이 아니라 내가 살아온 길을 점검하고 앞으로의 목표를 구체화하는 도구라고 생각한다면 다른 작업을 하는것보다 이 글을 쓰는것이 더 가치있다는 판단을 내릴 수 있었습니다. 세상은 살기 힘들고 특히 헬조선은 더 힘들지만, 그래도 눈여겨보면 쉽게 주울 수 있는 열매들이 많이 떨어져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4. KMUVCD 실크스크린, 모션그래픽 워크숍
이 워크숍은 여름방학중 국민대학교 시각디자인학과 학생들을 대상으로 열었던 워크숍인데 두가지 목표를 갖고있었습니다. 첫번째로 선후배들끼리 본인의 기술을 나누는 장이 많이 열리고 활성화되어 학구적인 학풍을 (약간 요리적인 요리학원같은 느낌..) 만들어보고자 하는것과 두번째로 엉성하게 알고있는 기술을 타인에게 가르치며 스스로 체계화 하기위함이었습니다.
비록 원했던 결과까지 나오지는 못했지만 위의 두가지 목표는 아주 성공적으로 이루었다고 봅니다. 최승준 교수님의 말씀처럼 누군가를 가르쳐준다는건 결국 본인에게 굉장한 도움이 됩니다. 가르쳐주는건 사실 아주 이기적인 행동인 것입니다.
5. 국회 청년정책마켓 행사
친구의 부탁으로 끼게 된 대외활동입니다. 사실 웬만한 구조는 다 짜여있고 거기에 숟가락만 얹는 정도였지만 배움에 있어서 참 효율적이었다 생각합니다. 기본적으로 모든 대외활동은 내가 하고싶은 일의 연장선이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하고싶지도 않고 관심있지도 않은 일은 해도 스트레스만 쌓일 뿐 아무런 배움도 없다고 느껴졌기때문입니다. 하지만 숟가락 얹는건 다른것같습니다. 남이 다해놓은것에 숟가락만 얹는건 패키지여행을 하는것처럼 깊이는 얕겠지만 안전하게 뭔가 배울 수 있는 방법이었습니다.
제 역할은 친구들이 만들어놓은 정책 검토, 행사부스 디자인, 국회의원을 대상으로한 입털기 정도였는데 뉴스에서만 보던 국회의원들은 정말 괜히 국회의원이구나 싶지 않을 정도로 굉장한 말빨과 위압적인 아우라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행사가 끝난 후 국회의원에게 탈탈 털렸음이 너무 부끄러워 집에 오자마자 적었던 글이 있습니다.
- 새벽부터 국회로 가서 종일 박혀있었다. 시각장애인 일자리 창출을 위한 정책, 입법, 사업 프로젝트였는데 화술에 도움이 많이 되었다. 기업 임원, 국회의원들과 언제 말을 섞어보겠는가. 오늘 느낀점은 내게 아직도 갈 길이 많다는점. 나에겐 빈틈이 너무나 많았다. 정책을 어필하기 위해선 상대가 중요하게 생각하여 듣고자 하는 포인트들을 빠르고 정확하게 캐치해서 핵심을 꽂아넣었어야 했다.
"저희는 어찌저찌해서 어떤 저떤걸 하는 이런저런 곳입니다~~" 부터 장황하게 늘어놓는 이야기는 발언권이 충분히 보장되고 스토리텔링이 필요한 곳에서나 하는 건데 말이다.
"그래서 핵심이 뭐야" 라는 말이 나온다면 지금까지 한 모든 말은 헛수고였다는 뜻이다. 중요한건 그거였다.
6. 학과 수업
혹자는 학점이 의미없다고 합니다. 맞는 말입니다. 학점은 의미가 없습니다. 중요한건 내가 이 수업에서 무엇을 배우고자 하는지 뚜렷하게 정하고 벼락치기로 과제를 수행하는데에 목적을 두지 않고 목표했던것을 배우는데에 목적을 두며 끝까지 그것을 결과로 내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럼 자연스럽게 학점은 따라옵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서 저렇게 수업을 임하는 학생에게 학점을 잘주고싶지 않은 교수가 누가있을까요.. 수업과 과제는 받는게 아니라 스스로 해내는 것이었습니다. 뒤에서 10등안에 들다가 저번학기 차석, 이번학기 수석(예상.. 4.5점을 맞는 괴물이 실제로 존재하지 않길 바람..)을 따냈습니다. 살면서 한번도 1등을 해본적이 없었는데 너무너무 기뻤습니다. 학점은 학점으로서 아무 의미가 없지만, 나의 배움에대한 객관적 지표라고 생각했을땐 아주 큰 의미를 가지는것 같습니다.
그리고 지금 새해를 20분 앞두고 있습니다. 시간안에 다 못쓸까 조마조마했지만 기막히게도 시간안에 끝냈군요. 지금까지 성공했던것, 이뤄냈던것만 잔뜩 써놔서 삼류 자기계발서 같은 느낌이 들지만, 저는 훌륭한사람들처럼 실패를 잘 딛고 일어서는 사람이 아니기때문에 의식적으로라도 성공경험들을 쌓아내는게 중요하기때문에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적었습니다. 그래도 몇가지 아쉬운점을 꼽자면
1. 매 순간순간의 배움들을 블로그에 올리지 못했다.
2. 사랑에서 실패했다.
3. 다른사람과 교류하는것에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다.
4. 항상 이기는 게임만 하려 했다.
로 꼽을 수 있겠습니다.
2017년이 시작되던 때에
'1년뒤 내가 돌아보며
"이번해에 나는 계획한것을 많이 이루었고 다음것을 해나가기위한 발판마련을 훌륭히 잘 했어”
라고 느낀다면 내가 이번해를 어떻게 보냈기 때문일까?'
하며 고민했던기억이 납니다. 지금와서 저 질문에 답을 내리자면
지금까지 해왔던 것을 잃지 말고 아쉬웠던 4가지만 더 챙겨서 꾸준히 조금씩 걸어가는 것
이라 생각합니다.
새해 복 많이받으시고 원하는것은 반드시 쟁취하시길 바랍니다 :)'철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플라톤 <소피스트> 맘대로 함께 읽기 1. (0) 2017.09.26 플라톤 <소피스트> 맘대로 함께 읽기 2 (0) 2017.09.26 파르메니데스의 세계 <소크라테스 이전의 철학자들에게로 돌아가라> 칼 포퍼의 뼈있는 독설! (0) 2017.09.25 파르메니데스의 세계, <소크라테스 이전의 철학자로 돌아가라> (0) 2017.09.05